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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조용준 이사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역사적 건물 재생 성공모델' 연재

작성자
ACCF
작성일
2018-10-30 14:25
조회
635
전남일보 : http://www.jnilbo.com/read.php3?aid=1539864000561925379

역사적 건물 재생 성공모델...日 최초 도시디자인 도입
도시재생 전문가들의 선전지 탐방-도심부 재생시킨 요코하마의 종합적 문화행정
바다 접합 야마시다 공원옆
800미터의 산책로 명소로
바샤미치 주민들 요청 수렴
입력시간 : 2018. 10.18. 21:00


요코하마 개항의 길. 필자 제공

● 왜 요코하마인가?

인구 370여만명이 살고있는 요코하마는 근대와 현대가 잘 조화되고 세련된 분위기를 갖고있는 세계적 도시디자인 도시이다. 또 선험적으로 문화예술을 가공하고 발신하고 있음은 물론, 아티스트나 크레이터를 육성하고 있는 창조도시이다. 일본의 대표적 거리가 된 바사마치 거리, 이세자끼 몰, 일본대로, 개항의 길 등을 걸어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근대건축을 소중하면서도 도시 재생의 화룡점정 요소로 삼았는가를 알게 된다. 또 사람의 존엄성을 얼마나 보호하고, 풍요로운 감정을 느끼도록 문화예술 도시로 가꾸어 왔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 도시는 미국에 개항한 1854년에는 겨우 100여가구가 살고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은 물론, 1945년의 대공습으로 도심부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2차대전 후에서 6.25사변이 끝날 때까지는 미군이 도심부의 주요시설을 접수했고, 회사들도 도시를 떠나면서 경제기반도 잃었다. 1960년대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심각한 공해문제를 겪었고, 1980년대에는 도심 임해부에 있던 조선업 불황으로 인해 위기의 도시가 되기도 했다. 또 많은 사람이 도쿄로 통근하는 베드타운이 되면서, 도시 스스로 활력을 만들지 못했던 도시가 요코하마였다 .

● 세계적 도시디자인

도시를 만든 협의형 도시디자인요코하마는 협의형 도시디자인을 통하여 자연과 역사, 사람이 공생하도록 한 도시로 유명하다. 중세 분위기를 갖고있는 유럽의 역사도시나 혼란스러운 현대도시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미지를 갖일 수 있는 이면에는 도시디자인의 공헌이 있는데, 이 대상은 대부분 도심부로써, 종합적 문화행정의 전개와 맥을 함께 한다. 도시디자인 전개는 도시미 대책 심의회의를 설치한 1965년에서 시작되었다. 1971년에 기획조정국에 도시디자인 담당이 설치되고, 1982년에는 도시계획국 도시디자인실로 확대개편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도시디자인은 먼저 대상지역의 디자인 정책을 정하고, 개발사업 주체와 협의를 통해서 실행하는 협의형이다. 동경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수립한 수도권고속도로가 요코하마 앞의 공중통과를 하게되자 도시경관을 저해한다면서 강하게 지하화를 설득하여 실현한 도시이다. 바다에 접합 야마시다 공원옆의 800미터의 산책로를 명소로 만들고, 가이칸 거리에 있는 산업무역센터와 가나자와 현민홀의 벽면을 3미터 후퇴시켜 보도폭을 확대했다. 또 두 건물의 모퉁이에 하나의 광장(페어광장)을 설치했고, 우편 저축회관 건물의 벽면 후퇴와 갤러리를 설치했다. 이를 본 바샤미치 주민들의 요청으로, 상점가의 아케이트 철거, 차도 축소와 보도확장, 가로수나 벤치, 화단설치, 벽면의 2.5미터 후퇴를 협의형 디자인으로 실현 하였다. 이후 이세자키몰, 간나이 지구, 모토마찌 거리, 미나토 미라이 21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헌했는데, 이들 거리의 대부분은 도심부였다. 특히 요코하마역과 간나이 지역사이에서 도심부를 분리하던 조선소 자리에 186ha의 공유수면 매립과 항만정비 및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통하여 건설된 미나토 미라이21은 도심부 활성화에 큰 공헌을 했다. 입주기업 1,770개, 고용인원 10만 2,000명, 연간 방문객 7,600만명인 이곳의 스카이 라인은 요코하마를 상징하는 경관이 되었다. 이 도시는 이제 도시디자인이 도시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 근대건축 자산을 활용한 도심부

재생 사업 도심부 재생에는 협의형 도시디자인을 포함한 종합적 문화행정 전개가 있다. 이 도시는 “전위예술 중시, 대체공간 활용(재생), 민간활력 도입”을 지향점으로 삼고 차근 차근 실현해 왔는데, 주 대상지역은 쇠퇴를 겪고 있는 도심부였다. 1970년대 중반에는 시민 위원회와 함께 연극과 콘서트 일부를 유료화하고, 역사적 건물이나 창고 등에서 공연을 하였다. 민간건물의 신축때에 건물주와 협의하여 용적률을 증대하고, 건물 일부를 문화시설로 활용했고, 지정관리사 제도를 도입하여 문화시설을 관리운영 하도록 했다. 2002년에는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가 살고 싶은 창조환경조성, 창조산업 클러스터 형성에 따른 경제 활성화 유도, 매력적인 지역자원 활용, 시민이 주도하는 문화예술창조의 도시조성”을 도시목표로 설정했다. 또 “창조지역 형성(문화정책), 영상문화 도시실현 (경제정책), 내셔날 아트 파크구상 (공간계획 정책)”을 중점 프로젝트로 설정하고 실행했다. 도심부의 역사적 건축물과 임해부의 창고를 창조공간으로 재생했다. 대학과 연대한 민간주도의 추진방안과 시민들의 코디네이트나 서포터 활용도 했다. 2003년에는 아사히맥주 예술문화 재단이 함께 (구)은행 이외의 역사적 건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활용사업의 운영단체를 공모하고, 2년간사업 후 평가제를 실시했다. 2004년에는(구)제일은행지점, (구)후지은행 지점등을 시민활동의 거점으로 재생하는 아트뱅크 1929를 실현했는데, 이는 해외에서도 주목했다. 시가 유치한 도쿄예술대학원 영상연구과 영화전공도 여기에 입주했다.

또 인정건축물, 등록 역사건조물을 지정하고, 보전수리나 유지 관리시에 재정지원도 했다. 이들 시설에 시민활동 및 지원봉사 활동거점인 시민지원 센터를 개설하고, NPO등 시민단체에게 저렴하게 빌려주었다. 그 결과 도심부에 문화 예술의 새로운 활동거점이 형성되어 문화예술 창조도시 요코하마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또 역사적 건물재생의 성공모델을 제시하였고, 도심부 활성화에 공헌했다. NPO도 효율적 시설운영과 경영에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민간소유 시설의 재생을 불러왔다. 또 영상문화 관련시설, 영상연극학교등 인재육성기능을 입지 시켜서 컨텐츠 생산을 선도하고, 관련 수요를 만들어 내는 영화 비디오, CG게임, 에니메이션등의 제작 관련 기업과 이를 지지하는 관련 산업이 입지하여 활력을 만들었다. “포트 사이트 지구에서 아마시다 부두”까지의 6개 워터프론트 구역을 관광거점 지구로 하고, 정비하도록 하여, 역사적 건물과 항구풍경을 결합하는 창조지역을 만들었다. 2001년부터 시작된 트리엔날레도 활력 창출에 공헌하고 있다.

● 도심부 재생에 공헌한 창조적 시장과 스텝들

요코하마 도심부 재생에는 2명의 창조적 시장과 스텝들이 있다. 이중 한 사람이 1963년부터 4선을 한 아스카타 이치오 시장이다. 사회당 국회의원었던 그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시장에 출마했던 사람이다. 아이디어 시장으로 불리운 그는 2사람의 스텝을 입청시켜 함께 창조행정을 도모했다. “근대적 시민 생활 우선, 민주적 평등, 공공적 계획성, 주체적 자치”의 4대 원칙으로 시정을 개시하였다. 일본 최초로 도시디자인을 도입했고, 기획조정국을 신설하여 수직적 조직 관계를 탈피하고, 국가시책이나 법률의 관점에서 벗어나 지자체 입장에서 자유로운 행정을 전개하도록 했다. “국제 문화도시”라는 콘셉과 “도심부 강화사업등 6대 사업도 이때 선정되어 이후까지 진행 되었는데, 문화예술 도시의 골격을 만든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1978년에 사회당 위원장이되어 중앙 정치무대로 복귀하고, 이후 20년간은 2명의 중앙정부의 고위관료가 시장을 하면서 시정의 정보 발신력은 감퇴되고, 시민을 위해 일하자는 탈 관료주의의 개혁 마인드도 사라진 보통도시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에 무소속인 37세 나카타 시장이 당선되면서 창조도시 행보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도 2사람의 스텝을 입청시켜 창조도시 만들기를 본격화했다. 그는 ‘민간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요코하마실현, 비성장/비확장 시대에 대응하는 행정 전개” 라는 2개 슬로건을 걸고 부흥계획도 발표했다. 뉴퍼불릭 매니지 먼트(NPM)도 도입했다. 도시경영 전략회의(시장 중심의 중요정책토론)와 도시경영 집행회의(부시장중심의 중요국시책 토론)도 설치했다. 정책결정 과정을 시홈페이지에 게재하여 모두 공유하도록 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행정과제를 유연하게 대응하여 효율적인 사업을 하는 본부제를 만들었다. 본부장 중심의 소수인원이 기동력을 발휘하여 목표달성 후에는 해체하는 시한부 조직으로, 문화행정에 많은 공헌을 남겼는데, 특히 문화예술도시 창조 사업본부는 “역사건축물 보존 및 활용(재생)”, “문화예술과 관광진흥에 의한 도심부 활성화검토 위원회설치”등을 통하여 문화예술 도시로 자리하게 했다. 요코하마가 도심부를 재생시킨 세계적 모델 도시가 될 수 있던 것은 1) 경직되고 수직적인 행정조직의 개편을 통하여 공무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조적 토론은 물론, 시민을 위해서 일하자는 탈관료주의의 개혁 마인드를 갖게 했다. 2) 역사적 자산의 보존과 재생을 통하여 문화예술인들이 안정적 활동을 전개하게 했다. 3) 행정은 지원을 하고, 민간이 중심이 되는 문화예술활동을 하게 하는 등의 종합적 문화 행정 전개가 있다. 요코하마는 광주와 함께 제1회 한중일의 교류도시로 선정되었던 도시로써, 지나친 도시외곽지역 개발로 인해서 도심 및 기성 시가지 쇠퇴를 겪고 있는 우리 도시에 시사점이 많은 도시이다.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전) 광주도시공사 사장

전) 중앙도시계획 위원

전) 한국주거회장


도시재생 전문가들의 선전지 탐방